백합 2차창작 SS 번역/우마무스메

[행복한 테이네이 이야기] #5-1 테이네이가 하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①

츄라라 2024. 2. 15. 20:40

 

 

총 글자 수가 4만 자에 달하기 때문에

나눠서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낙양 │ @love_tei0 │ https://nagyang.postype.com/post/13310039

 

작가 : じゃこ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7737567#1

 

#5 テイネイが一生一緒になるまでの話※キャプション必読 | 幸せなテイネイの話 - じゃこの小

着替え、タオル、レース用シューズ、財布、家の鍵、パスケース、コスメポーチ、突然の頭痛や腹痛に備えての薬。 それにハンカチ、ポケットティッシュ。 ……うん、おっけ、忘れ物なし

www.pixiv.net

 

작가 코멘트

테이네이는 물론이고, 루돌그루나 마야브라도 조금씩 나옵니다.
또한 트레센 학원을 졸업한 후의 이야기이므로, 그녀들의 진로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테이오의 키가 많이 컸습니다.
지금까지 써 온 테이네이 이야기들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동거도 하고 있고 키스도 하고 있습니다.
네이처의 어머니와 어릴 적부터 함께한 상점가 주민들도 나옵니다. 심지어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우마무스메의 본격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허용할 수 있는 분들만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갈아입을 옷, 수건, 레이스용 신발, 지갑, 집 열쇠, 카드 지갑, 화장품 파우치, 갑작스러운 두통이나 복통에 대비한 약.

그리고 손수건, 포켓 티슈까지.

……응, 좋아. 빼먹은 건 없고.

 

배낭 속을 한 번 훑어본 뒤, 편자가 없는 운동화를 신발장에서 꺼냈다.

쪼그리고 앉아 그 신발로 갈아 신고, 헐거워진 신발 끈을 풀고 다시 촘촘하게 묶었다.

 

「빠진 거 없어?」

「괜찮아. 다 있어.」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니, 네이처가 「응원하러 못 가서 미안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 얼굴로 미안한 듯 뺨을 긁적였다.

 

「가게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중계방송은 봐 줄 거지?」

「당연하지. 목이 터져라 응원할 거야.」

「고마워.」

 

오늘은 일주일만의 레이스.

트레센을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달리는 길을 선택한 나는, URA가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레이스에 선수로서 출주하고 있다.

트윙클 시리즈에 비하면 인지도는 조금 낮지만, 매주 전국 각지의 레이스장에서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레이스가 열리고 있고, TV 중계까지 빠짐없이 해 주고 있다.

 

「힘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떠나려고 했지만, 한 가지 빼먹은 것이 떠올랐다.

 

「아, 안 챙긴 게 있었네.」

「에?」

「그걸 빠뜨렸어. 알잖아?」

 

빠뜨린 것을 받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네이처를 기다렸으나, 눈앞의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기만 했다.

 

「에, 뭐야? 허그?」

「허그도 좋긴 한데, 그거 말고…… 그거 있잖아.」

 

손으로 턱을 받친 채 고심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내 내가 원하는 걸 알아차렸는지 볼을 붉히고 쓴웃음을 지었다.

 

「……안 할 거거든.」

「에~ 닳는 것도 아닌데 뭐가 어때서 그래.」

「그건 부탁받았다고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왜?」

「……부끄러우니까.」

「그치만 저번 레이스 때는 해 줬잖아.」

「그건…… 그, 그때는 그냥 그러고 싶었달까…… 아, 진짜아─! 이제 됐으니까 빨리 가 봐!」

「아~아, 내 승리의 여신은 너란 말이야. 이러다간 지고 올지도 몰라.」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자, 이러다 늦는다?」

 

하지만 실제로 이걸 받은 날과 받지 않은 날의 의욕 차이가 꽤 심했다.

아무리 우울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더라도 단숨에 최고의 상태가 될 정도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도중에 벌꿀 드링크라도 사서 의욕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다녀오겠습니다.」

「응, 다녀오세요.」

 

인사를 주고받고 집에서 나왔다.

문을 연 순간 눈동자에 비친 것은, 푸른 하늘과 도쿄의 거리.

피부에 닿는 것은 조금 차가운 5월의 바람.

혼자 자취할 때 살던 건물과 지금 사는 아파트를 비교해 보면, 지금 전망이 훨씬 더 좋았다.

가장 가까운 역까지 걸어서 약 15분. 역으로 가는 길에 상점가도 있고, 네이처네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식당도 있다.

동거를 제안했을 때, 가족이나 다름없는 이 상점가 사람들과 떨어지기 싫다는 그녀의 바람대로 2LDK에 지어진 지 9년 된 20층짜리 아파트인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 아파트 17층이 우리의 거처. 여기서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1년 반 정도가 지났다.

분리수거는 교대로 나가고 있고, 청소는 주에 한 번 정도 휴일이 겹쳤을 때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요리는 네이처, 빨래는 내 담당.

이유는 굉장히 단순했다. 네이처가 요리를 잘한다는 점과, 내가 그녀의 요리를 좋아한다는 점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내가 요리를 못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네이처가 해 주는 음식은 뭐든 일품이다. 게다가 영양 밸런스까지 하나하나 고려해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컨디션이 무너진 적도 없었다.

본인도 요리하는 게 즐겁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으로 그녀에게 일임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만 부담을 지어줄 순 없으므로, 빨래는 내가 맡기로 했다. 어느샌가 네이처를 내려다보게 됐을 정도로 키가 쭉쭉 큰 덕분에 빨래를 너는 것도 걷는 것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애당초 내 빨랫감이 더 많으니 내가 하는 게 알맞다는 생각도 들고.

나는 운동선수로서 생계를 유지하며 트레센 학원을 다닐 때와 맞먹을 정도의 훈련을 매일 하고 있고, 출주 예정인 레이스에 대비하고 있다.

가끔 스폰서 기업으로부터 상품의 선전 사진을 찍게 해 달라, 신상품을 리뷰해 달라 등 의뢰가 들어오면 기업에서 오신 분과 미팅할 때도 있긴 하지만.

한편 네이처는 어머니와 식당을 운영하면서 고령화된 상점가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어디까지나 도움이나 봉사에 가까운 활동이라 수익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도 도와준 답례라면서 네이처에게 야채나 쌀 등을 자주 선물해 주셔서, 식비에 꽤 큰 보탬이 된다.

휴일이 겹치면 둘이 점심때까지 침대 위를 뒹굴거리거나, 주방에서 같이 요리하거나,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거나.

가끔 싸울 때도 있긴 하지만, 우리는 지극히 양호하고 몸도 정신도 건강한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손목시계로 눈을 돌려 보니 현재 시각은 11시 3분.

레이스 출주 시간은 3시 45분.

늦어도 역에 11시 20분까지는 도착한다 치면, 거기서 도쿄 레이스장까지는 한 시간 조금. 거기서 또 옷을 갈아입고 몸을 풀고…….

예정을 떠올리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직후,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테이오─! 도시락 놓고 갔어!」

「엑!?」

 

뒤돌아보자, 네이처가 이미 여기까지 달려와 있었다.

그 손에 쥐고 있는 건, 배낭 안에 들어있어야 했던 점심 도시락.

「미안, 고마워.」라고 기껏 와 준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도시락을 받았다.

 

「하여튼, 똑바로 챙겨.」

「아하하……」

 

잔소리를 웃으며 받아넘긴 뒤, 배낭 지퍼를 열어 도시락을 확실히 챙기고 고쳐 맸다. 그러자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번엔 진짜 잘 갔다 올게.」

 

라고 말하고 한 발짝 내딛는 찰나 무언가가 팔을 잡아당겼고, 몸이 살짝 기울여진 것과 동시에 왼쪽 뺨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에.」

 

그 온기는 찰나라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고, 무심코 네이처를 향해 시선을 옮기자 그녀는 볼을 붉히고 눈동자를 내리깔고 있었다.

 

「오늘은 이거로 봐줘.」

 

그녀의 표정과 말이 합쳐져,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가슴속엔 기쁨이 퍼지고 입가에는 웃음이 번지는 게 느껴졌다. 거울을 안 봐도 알아. 지금 나는 굉장히 칠칠찮은 표정을 짓고 있겠지.

엘리베이터 문이 곧 닫힐 테니 서둘러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기분이 좋아진 나는 네이처에게 홀리듯 다가갔다.

 

「지금 볼에 키스해 준 것 같기는 한데, 순식간에 지나가서 잘 모르겠는걸…… 한 번만 더 해 줄래?」

 

방금 행동도 엄청나게 노력한 결과일 거라 생각하지만, 찰나로는 부족해. 나는 욕심쟁이니까.

 

「하겠냐 바보야! 됐으니까 이제 빨리 가!」

 

귀를 쫑긋 세우고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네이처가 나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고, 그대로 집안까지 달려가서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아쉬워라. 기회를 봐서 입술에도 키스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원하시는 층 숫자를 눌러 주세요」라는 무기질적인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황급히 버튼을 눌렀다.

 

 

 

도쿄 레이스장은 학생 때부터 몇 번이나 와 본 익숙한 레이스장 중 하나였다.

관계자 전용 입구 앞에 서서 선수임을 증명하는 ID카드를 꺼내려고 했지만, 거기 있던 경비원분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토카이 테이오 씨죠? 들어오세요」라며 입장을 허가해 주었다.

트레센 학원 졸업 후에도 선수를 지망한 우마무스메에게는 URA가 발행하는 ID카드가 주어졌다. 이 카드는 신분증 역할도 겸하고 있어 이름이나 생년월일은 물론이고 주소나 혈액형까지 기재되어 있으니,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다.

전국 각지 레이스장에 출입할 때 이 카드를 판독기에 댄 후 출입을 허가받는 게 보통.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트윙클 시리즈 때 활약한 덕분일까? 얼굴을 외우고 계신 건지, 이런 식으로 경비원분이 얼굴만 보고 통과시켜 줄 때도 종종 있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나서 나에게 배정된 대기실을 찾으러 갔다.

 

문 앞에 걸려 있는 이름을 확인하면서 대기실을 몇 개 정도 지나쳤을 때쯤, 누군가 「테이오」라고 나를 불렀다.

그에 반응해 몸을 돌리자, 졸업 후 레이스에서 몇 번인가 같이 달렸던 익숙한 우마무스메가 서 있었다. 은발 보브컷이 인상적인 그녀는 날카로운 선입 주법이 주무기로, 나이는 아마 나보다 3살 정도 많았던 것 같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네 대기실은 저쪽인데?」

「엥.」

 

내가 가던 방향과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아이코, 반대로 가고 있었구나…… 고마워.」

 

「천만에」라며 미소 짓는 그녀. 그러고 보니 거의 한 달 만에 만난 거 아닌가?

오랜만에 만났네. 살며시 말을 걸자, 그녀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아─…… 그러게. 여러모로 좀…… 상태가 안 좋았거든.」

「그랬어? 지금은 괜찮아?」

「응. 오늘 레이스를 위해서 단련하고 왔거든. 완벽해.」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세우며 활짝 웃는 그녀. 하지만 그 웃음은 곧 사라졌다.

 

「……말이 나온 김에 묻는 건데, 요즘 몸이 이상해졌다든가 달라졌다든가 싶은 거 없어?」

「응? 딱히 없는 것 같은데……」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갑자기 왜 그래?」

「……나 있잖아.」

 

질문을 던지자,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목소리도 어두운 게 느껴져서 가슴속이 술렁였다. 다음 말이 나올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아까와 달리 해맑은 미소가 보였고.

 

「오늘이야말로 너를 이기고 말겠어!」

「에엣!?」

 

그녀는 아주 명랑한 선전포고를 날리고는, 곧바로 내 등을 팡 두드리고 안 보일 때까지 달려갔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도무지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목소리에 그 기색이 묻어 있었다. 뒤이어 나올 말은 분명 그 미소와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으리라.

걱정돼서 당장이라도 쫓아가고 싶었으나, 따라가서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얌전히 대기실을 찾아가기로 했다.

 

대기실에 들어가 네이처가 만들어 준 도시락을 먹으며 출주자 리스트를 훑어봤다.

나는 2번 그룹 3번. 아까 만났던 우마무스메는 6번 그룹 12번. 총출주자 16명.

몇 번이고 달려 본 레이스장이니 언덕이 어디 있는지도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 남은 건 경험과 상황에 따라 다리를 움직이고,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달리는 것뿐.

도시락을 다 먹어 치우고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몸을 풀어 주면서 그때를 기다렸다.

 

 

 

레이스 후, 나는 대기실로 돌아와 선수용 샤워실을 이용하기 위해 짐을 뒤적이고 있었다. 수건을 꺼내던 도중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대답하자, 문고리가 끼익 소리를 내며 돌아가더니 은발의 우마무스메가 얼굴을 내밀었다.

수건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그녀는 「앗」이라는 당황이 섞인 목소리를 흘렸다.

 

「미안, 지금 샤워하려던 참이었어?」

「응, 그래도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오늘의 승자를 칭송해 줄까 싶어서 왔지. 1착 축하해.」

「고마워. 네 달리기도 엄청났어.」

 

그래, 그녀의 달리기는 정말 대단했다.

 

4코너를 돌아 최종 직선에 진입한 직후 두 번째 자리까지 치고 올라온 나는, 1마신 정도 앞서 달리고 있는 우마무스메로부터 선두를 탈취하기 위해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골인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그 거리는 점차 좁혀졌으나, 그 순간 등을 찌르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 레이스에서 몇 번이나 느껴 본 감각이었으니.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와 달랐다.

숨도 못 쉬게 짓뭉개는 듯한 강한 위압감에, 순간 등줄기에 오한이 내달렸다.

편자가 잔디를 짓누르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 곁눈질로 흘깃 살펴보니, 귀기가 서린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200m는 나와 그녀의 일대일 승부나 다름없었다. 선수를 빼앗고 빼앗기고를 반복했고, 마지막에 가장 빨리 골인 지점을 치고 나온 건 나였다.

 

「……정말 좋은 승부였어.」

「응. 다음에도 지지 않을 거야.」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자, 그녀는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당황하고 있노라니,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 있잖아, 테이오한테 감사 인사를 하러 왔어.」

「어?」

「……고마워. 마지막에 너와 겨룰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

 

그리 말하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쓸쓸해 보이기도, 덧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녀와 만나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어…… 마, 말투가 왜 그래. 꼭 은퇴하는 것 같……」

 

그때,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깨달았다.

 

「설마……?」

「응, 방금 그게 은퇴 경기였어.」

「왜……? 혹시 부상이라도 입은 거야!?」

「아하하, 부상 같은 건 없어. 팔팔하다고!」

「그럼 왜,」

 

독촉하듯이 물고 늘어지자, 그녀는 담담하게 이유를 털어놓았다.

 

「──몸이 따라오질 않아.」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나는 골똘히 휴대폰만 만지고 있었다.

 

『우마무스메 본격화』

『우마무스메 본격화 절정 후 증상』

 

휴대폰에 검색 이력에는 그런 단어로 가득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걸 예방할 방법 같은 건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우마무스메를 진찰해 봤다는 의사의 블로그를 발견했지만, 이 잡듯이 뒤져 봐도 원하는 정보는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쐐기를 박듯, 『우마무스메인 이상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라 적혀 있었다.

 

『몸이 따라오질 않아』.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우마무스메는 사춘기를 맞이한 뒤, 각자 다른 시기에 본격화라는 성장 기간에 들어선다.

개인차는 있지만, 트레이닝을 반복함에 따라 근력이나 지구력, 체력이 늘고 그에 비례하듯 식욕도 늘어난다.

그러다 성장의 최고점을 찍은 후에 모든 능력이 천천히 저하되기 시작하고,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신체 능력은 떨어져만 간다. 그전까지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할 수 없게 된다. 달릴 수 있던 거리를 달릴 수 없게 되고, 몸이 따라오지 않게 된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는 무어라 말을 꺼내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두뇌를 맹렬히 회전시킨 끝에 떠오른 대답은 「달리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인간과 같은 무대에서 계속 달리면 돼」라는 얄팍하기 짝이 없는 생각. 바로 이건 대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트가 열렸을 때 차오르는 흥분, 밟을 때마다 발에 닿는 잔디와 대지의 감각. 귀에 담기는 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편자가 땅에 잠기는 소리, 그리고 무수한 함성.

온몸을 지배하는 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게 끓어오르는 승리를 향한 열정.

이 모든 건 레이스장에서만 느낄 수 있다.

우리 우마무스메는 그것을 맛보았으니 무대를 옮겨 봤자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신체 능력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애초에 근육량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과는 승부도 안 될 것이 자명한 일.

격려도 위로도 동정도 전부 답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시기는 각자 다르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30살 전후로 은퇴한 우마무스메가 많았던 것 같다. 물론 금전적인 사정이나 부상이 원인인 경우도 있고, 30대 후반까지도 현역인 우마무스메도 있으므로 확언하기엔 개인차가 큰 것 같긴 하지만.

아직까지 내게는 그런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반드시 그때가 찾아올 것이다.

 

작게 한숨을 쉬고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밖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지금 시각은 오후 7시 7분.

그러고 보니 네이처는 오늘 일찍 출근한다 했었지. 그러면 퇴근도 일찍 할 테니, 곧 끝날 테지.

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근처를 지나갈 테니 그 김에 마중 나가자.

목적지인 역까지 앞으로 두 정거장. 왜인지 모르게 갑자기 그녀를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몇 번인가 방문해 본 네이처 어머님네 식당.

번창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단골손님이 꽤 있는 덕에 나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조금 세월이 느껴지는 목제 문을 당기자, 카운터 쪽에 계시던 어머님과 눈이 마주쳤다. 곱게 색을 칠해 놓은 입술이 호를 그리며 눈매가 부드럽게 굽어졌다.

 

「어서 오렴.」

「안녕하세요, 어머님.」

「오늘 경기 봤어. 축하해.」

「봐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당연하지. 테이오 쨩이 활약하는 모습을 놓칠 리가 없잖니?」

 

어머님은 나를 또 다른 딸처럼 예뻐해 주셨다.

레이스 중계는 꼭 봐 주시고, 시간이 맞으면 레이스장까지 응원하러 와 주시기도 했다. 나와 네이처의 동거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문 앞에 우뚝 서 있으니 「여기 앉으렴」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머님의 시선이 카운터석을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 조금 높은 둥근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네이처는……?」

「아, 방금 어떤 손님이 술을 몽땅 엎어 버리셨거든. 그래서 치울 걸 가지러 갔나 봐.」

 

그 얘기를 듣고 가게 안쪽을 둘러보니, 테이블석에 정장 차림의 남성 세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서로 같은 회사의 동료인 건지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고, 한 사람은 심하게 취했는지 상 위에 엎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축축하게 젖은 나뭇결무늬 바닥이 보였다.

 

「금방 돌아올 거야」라고 어머님이 말씀하시자마자 카운터 안쪽 문이 열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포니테일 모습의 네이처가 시야에 담겼다. 그 손에는 대걸레와 양동이가.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테이오? 왜 여기 있어?」

「조금 있으면 퇴근 시간이잖아? 나도 막 도착한 참이라 같이 돌아가고 싶어서.」

「조금이라면 조금이긴 한데, 아직 30분이나 남았는걸.」

「괜찮아, 기다릴게.」

 

그렇게 말하며 웃음 짓자, 네이처도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그녀는 대걸레로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나도 도와주기 위해 의자에서 내려오려는 순간 그녀에게 저지당했다.

 

「금방 끝나니까 앉아 있어. 엄마, 맨날 주는 거 하나 부탁해.」

「그래그래. 이미 준비 끝났어.」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네이처는 본인이 말한 대로 금세 청소를 마쳤고, 내 눈앞에 글라스 한 잔이 놓였다.

가니쉬인 레몬 조각이 돋보이는 이 한 잔은, 어머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레모네이드였다.

원래 메뉴판에도 있는 메뉴긴 하지만, 나에게 내어 주시는 레모네이드는 다른 손님에게 내어 주시는 것보다 달콤한 편이었다.

무려 나를 위해 꿀을 많이 넣은 시럽을 따로 만들어 두시는 것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인 후, 글라스를 손에 들었다.

꿀의 달콤함이 레몬의 새콤함을 커버해 줘서 아주 술술 넘어갔다. 오로지 달콤함만 있는 건 아니고, 뒤늦게 레몬의 새콤함이 찾아와 단조롭지 않게 적절한 조화를 이룬 맛. 평소와 같은 맛에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어머님과 오늘 레이스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잔을 기울이고 있던 도중, 어떤 대화가 귀에 꽂혔다.

 

「어~? 네이 쨩 아직 독신이야~? 그럼 나랑 결혼해 버릴래?」

「독신이긴 한데 아직 청춘이라 괜찮네요~」

「엑!? 뭐야, 사귀는 사람 있어? 어디 사는 누군데?」

「에이, 말해줄 리가 없잖아요~」

 

이런 얘기를 듣는 게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에도 거나하게 취한 남성에게 구애를 받는 장면을 봤었다. 네이처는 이미 익숙해진 것인지 능숙하게 말을 흘려보내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 연인인 내 입장에서 보기엔 정말 끔찍할 정도로 보기 싫은 장면이었다.

그들의 구애를 받아들일 리는 없겠으나, 우리는 결혼한 게 아니라 호적상으로는 그저 남일 뿐이다. 그녀와 나 사이에 확고한 연결점은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보면 연결점이 없는 만큼, 만일의 상황이 일어났을 때 행동에 제약이 없다는 점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만일의 상황은 절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네이처, 시간 다 됐어.」

 

어머님의 목소리를 듣고 손목시계를 확인해 보니 원래 퇴근 시간보다 10분 정도 빨랐다.

네이처도 그걸 눈치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앞치마를 풀었다.

 

「엣, 네이 쨩 벌써 돌아가는 거야?」

「죄송해요, 오늘은 대타로 왔던 거라 조금 일찍 가 볼게요.」

「에에~ 네이 쨩이 없으면 재미없는데~」

「어머, 나로는 불만족스럽다는 말인가?」

 

투정을 부리던 손님에게 어머님이 말을 걸자,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엣,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고…… 아, 이모님이 해 준 다시 계란말이가 먹고 싶네~」

「그래그래.」

 

쓴웃음을 지은 채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네이처가, 내 귀 가까이에 입술을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뒷문으로 나갈 테니까 밖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을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앞치마를 들고 카운터 안쪽 문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레모네이드값을 계산하려고 배낭에서 지갑을 꺼낸 후 냉장고를 열고 있던 어머님께 지폐를 한 장 건네드렸으나, 어머님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 받을 리가 없잖니.」

「그래도 항상 신세 지고 있으니까……」

「됐어. 그건 내가 사 주는 거야.」

「하지만……」

「음~…… 그럼 오늘 1착을 따낸 테이오 쨩에게 주는 상인 거로 칠까? 그 돈은 너희를 위해 쓰렴.」

 

그렇게 말씀하시면 여기선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

「감사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더니, 네이처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또 오려무나」란 말과 함께 손을 흔들으셨다. 그에 가볍게 묵례로 인사를 한 뒤 가게를 빠져나왔다.

 

 

 

바로 네이처와 합류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다.

약속대로 TV를 통해 레이스 중계를 본 듯, 네이처가 얼굴을 붉힌 채 「열심히 했네」라는 말을 시작으로 조금 흥분한 듯 레이스를 본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네이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건 그렇고, 최종 직선에서 테이오랑 달렸던 우마무스메, 굉장했어.」

 

갑작스럽게 네이처가 그 우마무스메를 화두로 꺼낸 탓에, 목소리가 차마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래?」

「아…… 그게…… 최종 직선에서 나랑 겨뤘던 그 애 있잖아, 오늘이 은퇴 레이스였대.」

「엣, 왜? 부상이라도 입은 거야?」

 

나랑 완전히 똑같은 반응이라 무심코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왜 그래?」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네이처에게 사정을 간략히 이야기해 주자, 납득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듣고 보니, 나도 그걸 느꼈다고 짐작 가는 부분이 있어.」

「어?! 그랬어?」

「그게…… 얼마 전까지 여유롭게 들 수 있었던 물건이 엄청 무겁게 느껴지는 거 있지?」

「언제쯤부터 그랬는데?」

「작년 말쯤인가?」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연말 대청소로 가구를 옮겼을 때 그녀만 지나치게 지쳤던 것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네이처가 곱씹듯이 중얼거렸다.

그 옆모습이 아주 조금, 쓸쓸해 보였다.

 

「테이오는 그때가 오면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어. 달리지 않는 미래는 상상이 안 가.」

「너는 달리는 거 진짜 좋아하니까.」

「응. 근데 그래서만은 아니야.」

「다른 이유가 더 있어?」

「있긴 한데, 말 안 할 거야.」

「에─ 왜 그러는데. 신경 쓰이잖아!」

 

물론 달리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내가 계속 달리는 이유가 그뿐만은 아니다.

예전에 사귀기 시작한 직후, 네이처가 내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게 너무 기뻐서, 네가 좋아하는 나로서 계속 있고 싶어서, 라는 건 부끄러우니까 절대 말 안 할 거지만.

 

「가르쳐 줘~」

「싫─어」

 

「궁금하네」라며 입술을 삐쭉 내민 네이처의 왼손을 붙잡아 손가락을 깍지 꼈다.

평소에 부끄럽다며 밖에서 손잡는 걸 피하는 건 알고 있지만, 오늘은 엄청 힘냈으니까 이 정도는 봐줬으면 해.

 

「잠깐, 테이오?」

「아무도 안 봐.」

 

그렇게 웃으며 말하자 네이처는 한숨을 쉬긴 했지만, 나와 맞잡은 손에 힘을 꼭 주었다.

 

「어쩔 수 없구만요, 열심히 한 테이오에게 주는 상이야.」

「에, 이게 끝? 다른 건 더 없어?」

「이게 끝이냐니, 말이 심하네에. 다른 건, 으음, 차차…… 으, 몰라.」

「아, 네이처 얼굴 새빨개졌다~ 무슨 상상을 한 거야~?」

「시꺼, 보지 마.」

 

얼굴을 돌리길래 몸을 숙이고 가까이 들여다보려고 했더니 한 손으로 나를 밀어냈다.

맞닿고 있던 어깨도 거리를 두려는 듯 멀어지길래 그녀의 왼손을 꼭 잡아 이쪽으로 당기자, 머리카락에서 술과 담배 냄새가 슬쩍 흘러왔다.

네이처가 퇴근하고 돌아올 때면 늘 이 냄새가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이 향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내가 모르는 네이처가 있는 것만 같아서 불안감이 엄습하고, 혹시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 피어오른다.

 

『어~? 네이 쨩 아직 독신이야~? 그럼 나랑 결혼해 버릴래?』

 

그 말이 귓속에 계속 맴돌았다.

아예 그녀와 결혼이라도 해 버리면, 이 불안감을 없앨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일생의 중대한 선택을 기세만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아예』라는 말을 붙여 결정하는 건 안 돼. 나뿐만 아니라 네이처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므로, 더더욱 안 되는 행위다.

우마무스메 간의 결혼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세간의 반응은 마냥 좋다고만 말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런 건 부정적인 의견이 더욱 눈에 띄는 법이다.

다른 우마무스메 커플이 입적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함께 들렸던 목소리는, 『우마무스메끼리 결혼이라니 대체 생각이 있기는 한 거냐』라든지 『우마무스메 아이를 낳았으면 그 애도 엄청 강했을 텐데 아깝기 짝이 없다』는 등의 매정한 말뿐.

하지만 그 흐름을 바꿔 놓은 우마무스메가 있었으니, 바로 황제라는 이름을 떨친 것으로 유명한 심볼리 루돌프였다.

회장은 몇 년 전 에어 그루브와의 결혼을 발표했다. 황제와 여제라는 대형 커플의 등장에 세간이 벌컥 뒤집혔고, 그때도 비슷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 회장이 아예 회견을 열어 질의응답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정도였으니.

처음에는 『두 분이 친해지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라든가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 같은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갑자기 한 기자가 『아이를 만들 수 없는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고약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리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럼에도 회장은 미소를 잃지 않고 의연하게 대답했다.

 

『저희 슬하에 아이를 둘 수 있었다면, 그 아이는 분명 그녀를 닮아 귀여운 아이였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오랜 교제를 거치며 깨달았습니다. 저와 그녀에게 있어 행복이란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걸요. 당연히 아이가 있는 삶도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아이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가 원하는 건,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부정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기자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자 회장의 분위기가 바뀌었고, 과거 레이스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위압감을 떨치며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타인의 행복에 참견할 권리는 없지 않은가? 나와 그녀를 부정할 순 없을 거라 말해 두지.』

 

화면 너머로 보는 건데도 엄청난 박력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회장은 곧바로 기자에게 『죄송합니다, 당신에게 한 말은 아니에요』라고 두둔해 주었으나, 그 기자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다.

그 회견 이후 인터넷이나 TV 방송 등에서 회장을 폄하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고, 회장이 길을 개척해 준 덕분에 다른 우마무스메 커플이 식을 올려도 전처럼 왈가왈부하지는 않게 됐다.

우리도 나름 오랜 세월 교제를 이어왔고 동거까지 하고 있으니 슬슬 결혼을 생각할 법도 한데, 그걸 말할 만한 타이밍이 좀처럼 오질 않았다.

아니, 사실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인의 연장선 같은 지금 관계에 쭉 만족하며 살았던 탓에, 그 타이밍을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이나 함께 한 주제에 『정말 나랑 결혼해도 괜찮은 걸까?』 『내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같은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누가 프러포즈할지는 미지수지만, 만약 내가 먼저 하게 된다면 멋지게 반지를 건네주고 싶다.

……네이처의 손가락 사이즈, 어느 정도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책 없이 그녀의 손가락을 문지르면서 감촉을 느끼고 있자니, 그녀가 「왜 그래?」라며 부자연스럽게 맞잡은 손을 보다가 나처럼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손가락을 문질렀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이자, 네이처도 함께 웃어 주었다.

 

 


 

 

이미 네이처를 찾아왔다는 이변. 그걸 알게 된 날부터 나는 몸 상태에 보다 더 신경 쓰게 됐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흘러 6월에 들어섰으나, 지금도 몸에 변화는 없었다. 평소와 같은 거리를 달릴 수 있고, 평소와 같은 무게의 바벨도 들 수 있으니까.

레이스에서도 다리는 가뿐히 움직였고,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해 달릴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나는 아직 괜찮은 것 같다.

 

항상 다니는 헬스장에서 나왔더니 거센 비가 아스팔트를 적시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7시를 막 넘은 참이었다.

일기예보에서 「밤부터 빗줄기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 말했으니, 조금 뒤엔 비가 더 거세지겠지.

우산을 펴고 걷고 있노라니 머리 위에서 빗방울이 부딪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장마 소식이 들린 건 일주일 전.

빗소리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이게 앞으로 며칠이나 계속될 거라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그래도 비에 젖어 거무스름한 도로나 인도가 신호등 색이나 거리의 불빛을 비추는 모습, 물웅덩이에 비친 그 장면을 빗방울이 파헤치는 모습 같은 건 조금 좋아한다. 평소보다 더 반짝거려 보이니까.

 

열쇠를 꽂아 돌리고 「다녀왔어」라고 소리치며 문을 열었다.

신발을 벗은 후에 거실로 가 보니, 낯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

 

가구들이 어질러져 있다.

온갖 수납장이 다 열려 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잡동사니들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다.

어질러져 있다기보다 널브러져 있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보기 심한 상태. 마치 도둑이라도 들은 듯한 장면이다.

그러고 보니 네이처가 안 보였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 했었고 불도 켜져 있는 걸 보니 집 안에 있을 텐데, 대체 어디에?

주방을 들여다보던 중 침실 쪽에서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작은 비명이 들려 심장이 터질 뻔했다.

 

「지금 건……?」

 

꺼림칙한 상상이 뇌리를 스쳐 마음속이 심란해졌다.

심장이 쿵쿵 불쾌한 경종을 울리기 시작해, 거실에서 뛰쳐나와 침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아, 테이오 왔었구나. 어서 와~」

 

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옷장을 뒤지는 네이처가 시야에 들어와, 두뇌 회전이 멈췄다.

「다녀왔어」라고 대답하는 것도 잊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으니.

 

「왜 그래? 놀란 토끼처럼 눈을 뜨고.」

 

라는 네이처의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방금 난 소리랑 비명은……」

「아아, 이걸 떨어뜨렸거든.」

 

그녀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그 자취를 쫓아가자, 옷장 상단에 넣어 놨던 의류 케이스가.

 

「어…… 그럼 집이 어질러져 있던 건 뭐야?」

「앗, 미안! 뭘 좀 찾다 보니 그렇게 두고 잊어버렸네.」

 

「깜짝 놀랐겠다, 미안」이라며 쓴웃음을 짓는 네이처.

그 순간 팽팽히 쥐고 있던 긴장의 끈이 확 풀렸다.

한숨을 푹 쉬고 힘없이 그녀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간 뒤, 그대로 쓰러지듯 껴안았다.

 

「우왓, 뭐야.」

「진짜, 이러지 마…… 안 좋은 상상해 버렸잖아.」

「에? 그게 무슨 말이야?」

「……네이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식겁했어.」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아~……」라고 탄식을 흘리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 걱정해 줘서 고마워.」

 

아까까지만 해도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녀의 온기를 확인하듯 양손으로 껴안은 채 심호흡했다.

아무 일도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 뭘 찾고 있었던 거야?」

 

도둑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집안 곳곳을 필사적으로 뒤졌던 거니, 분명 아주 소중한 물건일 터. 그렇다면 나도 함께 찾아 주고 싶었다.

 

「반지.」

「헙……」

 

상상도 못 한 대답에 심장이 쿵 떨어지면서 이상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네이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고, 크흠, 헛기침을 했다.

 

「어, 어떤 건데?」

「그거 있잖아, 파란색으로 반짝이는 돌이 붙어 있는 거.」

 

파란색으로 반짝이는 돌이 붙어 있는 반지.

……그녀에게 그런 반지를 준 기억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찾는 것으로 보아 소중한 물건임은 확실했다.

설마,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서 받은 선물……? 어쩌면 그때 가게 손님이라든가……!?

 

「……기억 안 나는 거야?」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나를 보고, 네이처는 눈썹으로 팔자를 그리며 물었다.

어떡하지. 이 반응으로 봤을 때, 내가 준 게 확실해. 그런데 전혀 기억이 안 나.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노라니 네이처의 귀가 축 내려앉았고, 슬픔이 서린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아, 잠시만, 그런 얼굴 하지 말아 줘, 진짜 열심히 기억해 볼 테니까, 응?

 

「다, 당연히 기억하지…… 그, 그거잖아, 그거! ……나도 거실에서 좀 찾아보고 와야겠다~」

 

금방 기억이 날 것 같지는 않았기에, 일단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의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허둥지둥 침실에서 빠져나와 거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다시 두뇌를 회전시켰다.

지금까지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그녀에게 선물했던 것을 전부 떠올려 봤지만, 역시나 반지는 기억에 없었다. 하지만 그 반응으로 보아 내가 선물한 게 분명했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하아.」

 

우선 어질러진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 반지를 찾기로 했다.

널브러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넣은 뒤, 열려 있던 서랍을 하나둘 닫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잡지나 화장품도 원래 위치에 돌려놓은 뒤, 소파 위에 있던 리모컨도 TV 아래 수납장에 정리했다. 그리고 그때, 무언가 신경 쓰이는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수납장 안에는 영화 디스크나 녹화용 블루레이 디스크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보다 더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상자 같은 물건이 놓여 있던 것이었다.

궁금한 나머지 양손으로 디스크들을 치우고 그것을 끄집어냈다. 그 정체는 플라스틱으로 된 수납 박스.

……그러고 보니, 네이처는 트윙클 시리즈 때 받은 팬레터를 이 안에 보관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내용물이 궁금해서 뚜껑을 열어 보자, 수많은 봉투가 고무줄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졸업할 때 받았던 롤링 페이퍼와 손바닥 크기의 작은 상자가.

그걸 슬쩍 열어보니, 안에는 네이처가 말한 것과 똑같은 반지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상상했던 것과 제법 차이가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파란색으로 반짝이는 돌의 정체는 아크릴이었고, 손가락을 빙 둘러 덮는 부분은 도금된 플라스틱이었다.

괜찮은 브랜드의 고가 상품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마치, 아니, 마치라 포장할 것도 없이 누가 봐도 명백한 장난감 반지였다.

 

「……아.」

 

떠올랐다.

그래. 이건 수년 전, 아직 사귀지도 않았을 때 내가 준 선물이었다.

 

네이처네 팀과 함께한 여름 합숙 때 일이었다. 마침 숙소 근처에서 불꽃놀이 축제가 열린다고 하여, 한숨 돌릴 겸 다 같이 외출했었다.

축제장으로 가 보니 노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금붕어 뜨기나 솜사탕, 야키소바 같은 축제 단골들이 즐비한 가운데, 내 눈에 가장 들어온 것은 사격이었다.

회장에게 요령을 배운 덕에 자신감이 넘쳤던 게 그 이유였다. 기왕 도전하는 김에 누군가 봐 주길 원했던 나는, 근처에 있던 네이처에게 말을 걸었다.

원하는 거 있어? 네이처가 원하는 거로 따 줄게. 그렇게 말하는 나에게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이 뭐든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기대라곤 추호도 없어 보이는 그 얼굴에 조금 울컥했고, 그 얼굴을 깜짝 놀란 얼굴로 바꿔 주고 싶어서 사격장에 있던 상품 중 가장 작은 이 상자를 노린 거였다.

코르크탄 3발을 전부 맞춰 무사히 경품을 획득한 나를 보고 네이처는 대단하다며 칭찬해 주었다.

경품을 받을 때, 설마하니 그 안에 반지가 들어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건네주는 순간 이상한 분위기가 자리 잡은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 그 반지를 찾고 있었을 줄이야.

직접 준 나조차 잊고 있었던 것을 네이처는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소중히 여겨 주고 있었다.

……뭐, 너무 소중히 보관한 탓에 어디에 있는지도 잊어버린 것 같긴 하지만, 지금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니까.

 

침실을 살짝 들여다보니, 네이처는 아직도 옷장 안을 뒤지고 있었다. 이대로 건네주기엔 뭔가 시시하단 생각이 들어 케이스에서 반지를 꺼내고, 몰래 뒤로 다가가 등에서부터 껴안았다.

 

「네~이처.」

「우왓?! 까, 깜짝이야……」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오른손을 잡고 끌어당기자, 그녀가 「테이오?」라며 이상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찾았어. 이거지?」

 

처음에는 왼손 약지에 끼워줄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장난감이 차지하기엔 과분한 자리였다.

무엇보다 "그때를 위해"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에, 오른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하아…… 엣!? 이거 어디 있었어?」

「TV 아래 수납장에.」

「……아~ 그렇구나. 그랬었지…… 완전 까먹고 있었어.」

「아직 가지고 있었구나.」

 

어깨너머로 네이처가 이쪽을 바라보며 「드디어 생각났어?」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응, 생각났어. 처음엔 기억이 잘 안 났어. 사귀기 전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오른손 약지에 끼워 준 반지를 바라봤다. 곧 네이처도 같은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근데 이거 꽤 옛날에 준 건데, 지금까지 안 잃어버리다니 대단하네.」

「그거야 뭐…… 좋아하는 애한테서 받은 거기도 하고……」

「에, 네이처 그때부터 이미 나를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습니다만……」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네이처. 맞닿아 있는 몸도 어쩐지 따끈따끈해진 것 같다.

뜻밖의 사실에 호기심이 생겨,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배에 두르고 있던 양팔에 힘을 더 주어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

 

「있잖아, 정확히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거야?」

「그런 옛날 일을 기억할 리가 없잖아.」

「에에? 구체적인 계기가 없는 거야?」

「없어…… 정말 어느샌가 좋아하게 됐는걸. 그래도 뭐, 사랑에 빠진다는 게 그런 거 아니야? 테이오는 어떤데?」

「엑?」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어?」

 

……듣고 보니 나도 어느샌가 그녀에게 빠졌던 것 같다.

 

「……언제였더라.」

 

그리 중얼거리자 네이처는 후훗 웃었다.

 

「이것 봐, 똑같지?」

「근데 네이처, 중간에 다른 사람을 좋아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그땐 너밖에 안 보였으니까, 한눈팔 여유라곤 없었거든요.」

「와아…… 네이처는 가끔 직구를 던진다니까.」

 

내가 물어봐 놓고 부끄러워져서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그 합숙 때부터 이미 나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거라면, 내가 고백할 때까지 적어도 2년이 넘도록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뜻.

정말 길었을 테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네이처의 왼손을 잡아 깍지를 끼고, 약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렇게나 날 좋아해 준 거구나. 역시 여기엔 제대로 된 번듯한 반지를 끼워 주고 싶어.

 

결심을 다진 그날 밤, 네이처가 자는 동안 몰래 손가락 사이즈를 쟀다.

다음날 나는 스폰서와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유명한 주얼리 브랜드 매장을 들렀다.

진열장 안에 들어 있는 눈부신 물건들을 보고 있던 도중, 붉은 머리의 우마무스메 점원이 「선물하시나요?」라고 내게 말을 걸었다.

그 후에 정성스럽게 상품을 설명해 주셨지만, 종류가 너무 많아 결국 고르지 못했다.

전부 같은 반지라고는 하지만 여러 디자인이 있으니까.

『솔리테어 링』, 『멜레 다이아』, 『이터니티 링』, 『파베 링』, 『보석류』

크게 보자면 이렇게 다섯 종류가 있다.

여기서 더욱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세분화되어 있다지만, 거기서부턴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점원분의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반지는 있었으니 같이 사러 오는 게 가장 무난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왕 주는 거라면 역시 서프라이즈로 주고 싶었다.

머리를 맹렬히 회전시키면서 점원분에게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말을 남긴 뒤, 우선 카탈로그만 받고 돌아왔다.

바로 건네줘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평상시대로 생활하면서 좋아할 만한 것을 추리해 보기로 했다. 이제 남은 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건네줄지를 정하는 것. 가장 먼저 교제를 시작한 날이나 생일 등의 기념일이 떠올랐지만, 평범한 날에 건네줘서 기념일을 하나 더 늘리는 것도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는 레스토랑이나 야경이 멋진 전망대 등 떠오르는 곳이 몇 군데 있으나, 네이처는 그런 곳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걸 싫어하니 늦은 밤 공원이라든가 집에서 주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건네줄지가 남았지만…… 음, 이건 우선 반지를 고른 뒤에 생각하자.

……반지를 건네주면, 네이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선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그 뒤에 기쁜 듯이 웃어주려나. 아니면 눈썹을 누그러뜨리며 수줍게 눈동자를 바닥에 향할지도 몰라. 아직 반지를 산 것도 아닌데 그 얼굴을 상상하기만 해도 저절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흐…… 헤헤.」

 

매장을 뒤로 하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 얼굴은 느슨한 채였는지, 현관으로 마중 나온 네이처가 의아하단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왔다.

올해도 TV에서는 「지독한 폭염」이 계속될 거라는 말만 반복했다.

사정없이 이글거리는 태양이 아스팔트와 지면을 지글지글 태우고 있다.

2리터짜리 물통을 챙겼는데도 이미 다 마셔 버렸을 정도로 지독한 더위였다.

수도꼭지를 틀어 머리에 물을 뒤집어쓰는 순간, 이미 녹아 버린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덥잖아~! 마야 녹아 버릴 것 같아…… 왜 이런 날에 병합 레이스를 하자고 한 거야.」

「오늘밖에 비는 날이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그건 그렇지마안.」

「그리고 마야노도 마음껏 달려 보고 싶다며.」

「그런 말 한 적 없…… 아, 했던 것 같아……」

 

계기는 지난 화요일 밤, 네이처의 취향을 조사하기 위해 액세서리 특집 잡지를 펴고 「이거 예쁘지 않아?」 같은 말을 꺼내면서 같이 잡지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네이처의 의견을 곱씹으며 페이지를 넘기던 중, 갑자기 마야노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었다.

마야노는 현재 항공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파일럿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와 훈련으로 지독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네이처도 있는 김에 영상 통화로 바꿔서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마야노는 일하면서 생긴 푸념을 털어놓기도 했다. 상당히 스트레스가 쌓였던 듯 대화 도중 「옛날처럼 마음껏 뛰어 보고 싶다……」라는 말을 내뱉었고, 그에 맞춰 내가 병합 레이스를 제안하자 마야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서로의 일정을 확인하고 맞춘 결과, 오늘 만나게 된 것이다.

오후 1시에 여기, 시영 레이스장에서 만나기로.

인간뿐만 아니라 우마무스메용 트럭도 완비되어 있고, 잔디 레이스장도 더트 레이스장도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 탈의실과 코인 샤워룸까지 있어 나도 몇 번인가 신세를 진 곳이다.

 

세수를 마친 뒤 수도꼭지를 잠갔다.

물방울에 바람이 닿으면 조금이나마 더위가 누그러지기 때문에 얼굴에 흐르는 물을 그대로 두고 싶었으나, 보기 흉한 꼴이 되므로 착실히 수건으로 닦았다.

더위 때문에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만 있는 마야노에게 「너도 해 봐. 시원하다니까?」라고 권하자 조금 망설이더니, 이내 나처럼 머리에 물을 뒤집어썼다.

그 후 열이 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나무 그늘 벤치로 함께 피난을 떠났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태양은 아직 높이 떠 있었다. 시원해지려면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더우면 한 번만 달려도 녹초가 된다구.」

「그건 그래.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간 쓰러질 수도 있어…… 마야노 쨩, 수분 보충은 하고 있지?」

「하고 있어. 물통도 큰 거로 가져왔는데 벌써 바닥날 것 같아.」

「그치, 나도야.」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들을 사락사락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 미지근한 바람이긴 하나, 그늘에 있는 덕에 뙤약볕에서 맞는 바람보단 훨씬 시원했다.

근처 나무 위에서는 귀가 떨어질 정도로 매미가 맹렬히 울고 있으니, 새삼스레 올해도 여름이 찾아왔다는 감회가 깊어졌다.

물통을 기울이니 안에 든 얼음이 부딪치며 딸그락딸그락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차가워진 보리차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네이처 쨩이랑은 어때?」

「응? 딱히 달라진 건 없는데…… 사이도 원만한 것 같고.」

「역시 아직도 러브러브하구나아~」

「러브러브라 할 정도는 아니거든…… 그러는 마야노는 어떤데?」

「그게 있지! 좀 들어 봐, 브라이언 씨가 말이야~!」

 

마야노는 기다렸다는 듯이 씩씩거리더니 브라이언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데이트라 마음먹고 조금 화려한 옷을 골랐더니, 「보기만 해도 춥다」며 억지로 겉옷을 입혔다든가.

직장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다 했더니 「혼자 돌아올 수는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든가.

 

「마야는 이제 어른인데, 브라이언 씨는 항상 어린애 취급한단 말이야.」

 

볼을 부풀리고 입술을 삐죽 내민 마야노가 귀여워서 쿡쿡 웃고 있으니, 「뭐가 웃겨!」라면서 큰 눈망울에 불만을 가득 담은 채 나를 바라봤다.

 

「마야노는 뭘 모르는구나. 그건 어린애 취급이 아니라 특별 대우라 하는 거라고.」

「특별 대우?」

「응. 그 보기만 해도 춥다고 한 옷 사진 있어?」

 

마야노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손가락으로 몇 번 누르더니, 「이거」라면서 화면을 보여 줬다.

 

「이 옷, 어깨에다가 쇄골까지 보이잖아. 자기 외에 다른 사람에겐 보여 주기 싫어서 그렇게 말한 거 아닐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입술을 꼭 다물고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마야노가 눈을 반짝였다. 고개를 끄덕여 주니 이제는 조금씩 웃음을 지으면서.

 

「그럼, 혼자 돌아올 수는 있을지 걱정이라 했던 것도……」

「응. 마야노를 정말 좋아하고 귀엽다 생각하니까 진심으로 걱정한 거라 생각해.」

「뭐야아~ 그런 건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데~」

 

웃음꽃이 활짝 핀 채 휴대폰을 바라보는 마야노.

우연히 휴대폰 대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브라이언이 길고양이에게 부드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 이미지였다. 너무도 낯선 얼굴인 탓에 입에서 저절로 「저런 표정도 짓는구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마야노는 기쁜 듯이 「마야한테도 가끔 이런 표정을 지어 줘」라며 웃었다.

 

 

 

「세팅할게.」

 

휴대폰을 조작하던 마야노가 이쪽으로 돌아섰다. 「오케이」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휴대폰을 벤치 위에 놓고, 내가 서 있는 스타트 라인으로 달려와 자세를 잡았다.

삐, 삐. 일정 간격의 전자음이 울린 후, 심장을 꿰뚫고 나가는 듯한 휘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에 맞춰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편자가 잔디를 뭉개는 소리와 함께, 마야노가 한발 앞서 앞으로 뛰쳐나왔다.

그대로 기세를 몰아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는 마야노.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3마신 정도 차이를 두고 그녀의 뒤를 쫓았다. 미지근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대지를 박차며, 한여름의 공기를 가르고 나아갔다.

마야노는 마지막으로 달린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 했지만, 역시 우마무스메의 기본 신체 능력은 무시할 수 없는 법. 그 시절과 아무런 차이도 없는 달리기로 잔디 위를 누볐다.

 

3코너를 지나는 순간, 그녀를 따라잡기 위해 더욱 중심을 낮추고 숨을 들이마신 뒤, 왼발로 잔디를 힘차게 밟았다.

 

 

──빠직.

 

 

몸 안쪽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겪어본 적 있는 감각에, 숨이 막혔다.

왼발에 힘이 안 들어가. 그리고 안쪽에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

적어도 조금이나마 속도를 줄여 보려고 하긴 했지만, 그럴 만한 여유라곤 없었다.

아무튼 아파. 미칠 것같이 아파.

무릎부터 시작해 무너져 내리듯이 몸이 기울었다. 머리를 부딪힌 건지 의식은 점점 멀어져 갔고, 그토록 시끄럽던 매미 소리마저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점차 들리지 않게 됐다.

 

「테이오 쨩!!」

 

나를 부르는 마야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대답도 못한 채, 타오르듯 느껴지던 감각이 점차 스미고, 희미해져서.

 

의식이 끊어졌다.

 

 

 


 

 

쟈코 작가님 작품은 뭔가 있을 법한, 실제로 누군가 겪고 있을 법한 문제의식을 다루는 게 매력 중 하나라 생각해요.

뒷편에서도 그런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요.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백합과 현실의 동성애는 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백합 작품 안에서 이런 의식을 거론하는 걸 선호하는 분도, 선호하지 않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제법 재밌게 읽는 편입니다ㅎㅎ

 

당장 동성애 말고도 우마무스메의 본격화라든지 향후 진로라든지

여러모로 작품을 깊이 생각하고 즐기는 분이라는 게 느껴져서 재밌지 않나요?

 

근데 매편마다 너무 길어요

진짜 죽겠어요;;;

요즘 들어 블로그에 테이네이 검색하면서 찾아 드시는 분들이 많길래 맘 다잡고 후편을 잡았는데

진짜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