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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열쇠는 아이키요 후우카] #2-1 이웃집 미식 테러리스트

by 츄라라 2024. 8. 11.

 

 

너무 길어서 한 번 끊었습니다.

#2-2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ダリウリ │ https://www.pixiv.net/artworks/114219518

 

작가 : るびび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2071596#2

 

#ブルーアーカイブ #愛清フウカ 美食の鍵は愛清フウカ - るびびの小説 - pixiv

あの日。生まれて初めて、告白をした。 相手は、シャーレの先生。誰かの助けになる為に連日色んな方々へ走り回り、自分の事は疎かになってしまっている先生の姿に、恋心を抱いていた。

www.pixiv.net

 

 

 


 

 

 이사 당일의 이야기.

 

 이른 아침부터 짐이 담긴 박스나 새로운 생활을 위해 구매한 가구 등을 업자를 통해 새집으로 옮기고 있었다. 양이 많지는 않았으므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점심이 지날 무렵이 되자 업자는 돌아갔다. 물이나 전기, 가스 등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을 개통하는 것도 문제없이 마무리되었으니, 이 집에서 살 준비는 대강 끝났다고 봐도 좋았다. 하루를 통째로 써야 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맥이 빠지기도 했다. 남은 건 자질구레한 짐들을 정리하는 것뿐이려나.

「……」

 한숨 돌리는 김에 아무 생각 없이 방을 슥 돌아봤다. 서양식 방과 다이닝 키친이 있는, 이른바 1DK 형식의 집. 급양부에 있었을 때의 경험을 토대로 넓은 부엌을 쓰고 싶었다. 부엌은 마음 편히 요리할 수 있는 넓은 곳이 좋아. 그 소망이 그대로 녹아든 널찍한 부엌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후훗.」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사라는 귀중한 이벤트까지 맞물려 절로 텐션이 오른 것 같았다. 집세도 예산 내 범위였기 때문에 내부를 견학하자마자 충동적으로 계약한 이 1DK 방. 자취하는 것 치고는 분에 넘치는 집이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주 타당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여기서 요리하는 게 기대돼. 방 정리를 조금만 더 한 다음에 식재료를 사러 나가야겠어. 이 빌라 근처에 슈퍼가 있다는 건 이미 조사해 뒀다. 철두철미란 바로 이런 거지.

「어디 보자.」

 다이닝 키친에서 방으로 돌아가, 아직 남은 짐들을 마저 풀기 시작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제 얼마 안 남은 박스의 테이프를 뜯고 내용물을 하나둘 확인했다.

 식기와 조리도구가 들어 있는 박스. 레시피에 관한 책이나 메모, 요리 방송을 녹화해 둔 것들을 모아 놓은 박스. 이 박스에는 서양식 옷들. 이것들을 차례차례 적당한 장소로 옮겨 담았다. 요리랑 관련된 짐이 가장 많다는 점이 참으로 나답다고 생각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은 박스는 하나밖에 없었다. 가져온 박스 중에서는 가장 작은 박스.

「이건 아마……」

 카레나 파스타용 소스 같은 가공식품들을 넣어 둔 기억이 났다. 포장을 뜯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가공식품들이 튀어나왔고, 익숙한 포장지들이 눈에 담겼다.

「──아.」

 그 안에 있던 작게 포장된 무언가. '인사'라고 쓰인 종이에 싸인 소바였다. 그걸 보고 나서야 아직 이웃들에게 인사를 돌리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바깥이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끝내는 편이 좋을 거라는 생각도 함께.

 그렇게 마음먹었으면 서두르는 게 좋겠지. 세면대 앞에 서서 최소한의 몸단장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이 빌라는 2층 건물이고, 내가 계약한 방은 102호실. 양쪽 이웃들에게만 인사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소바도 그에 맞춰 준비해 왔다.

 101호실과 103호실, 둘 중 어디부터 가는 게 좋을까. 둘 다 거기서 거기려나?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103호실부터 방문하기로 했다.

 샌들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기를 몇 번. 문 앞에 서서 그 방의 인터폰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르자, 문 안쪽에서 초인종 소리가 띵동 울려 퍼지는 것이 들렸다. 그대로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다가.

「……안 계신가?」

 30초 정도 기다려 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평일이니까 부재중일 수도 있겠다. 조금 더 기다려 봤지만 역시나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으니, 여기는 다음 기회에 다시 오기로.

 그럼 이번엔 101호실로 가 볼까. 다시 경쾌한 샌들 소리를 내면서 반대쪽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까와 똑같은 인터폰 버튼을 눌러 사람이 왔음을 표현했다.

 띵동.

『네.』

 이번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답이 돌아왔다. 다행이다, 여긴 안에 계셨나 보네.

「옆집에 이사 온 아이키요라고 합니다.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그러시군요. 지금 열어 드리겠습니다.』

「아, 넵.」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후 인터폰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그러시군요, 지금 열어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고상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어휘를 사용했다는 점이 아니라, 그런 말투가 입에 배어 있다는 점이. 이런 사람이 옆집에 살고 있다는 게 조금 신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맨션은 빈말로도 아주 세련됐다고는 말 못 할 곳이니까. 오히려 와르르 맨션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낡은 티가 나는 곳이었으니. 지어진 지 10년은 넘은 곳이라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었고, 그 덕분에 내 얼마 안 되는 예산으로도 이 1DK 빌라와 계약할 수 있었다.

 그런 빌라에 고상한 느낌의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의외였다는 거다. 고풍스러운 사람들은 이런 빌라가 아니라 좀 더 깔끔하고 화려한 아파트 같은 곳에서 살 거라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으니까.

 어떤 사람이 나타날까. 아주 조금 긴장한 채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문 건너편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들렸고, 잠금을 풀고 문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나더니,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그 순간이 찾아왔다.

 천천히, 부드럽게 열리는 문.

 그 안에서 나타난 인물의 모습을 보고.

「안녕하세──」

 내 인사가 마침표를 찍는 일은 없었다.

 대체 어떻게.

「평안하셨는지요, 후우카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

 내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이제는 조금 그립기도 했던 사람.

「하루나……!?」

 미식 테러리스트.

 쿠로다테 하루나가 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키보토스에서 한 달만이라도 살아 본 사람 중에 쿠로다테 하루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늘 미식을 추구하는 미식연구회의 부장으로, 신출귀몰하게 나타나 마음에 안 드는 식당을 무자비하게 폭파하는 그 모습은 늘 뉴스에 오르내리기 마련. 동영상 사이트에 그 모습이 올라오기라도 하면 조회수가 대박이 나니 짧은 영상이라도 SNS에서 폭발적으로 확산되어 접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워졌으니까.

 그래서일까? 하루나는 요식업계에서 경외의 대상이었다.

 무서운 건 당연하지만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싶으면 그 가게는 장래의 안정성을 보장받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 때문에 도전적인 음식점은 하루나가 내점하기를 기다린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식(食)'에 관해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내뿜는 인물.

 그 유명인과 나는 교류하고 있었다. 같은 학교의 미식가와 급양부라는 직책에서부터 우리가 만나는 건 필연적인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인력 부족과 설비 부족으로 인해 만족스러운 급식을 제공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하루나에게 급양부를 폭파당한 게 도대체 몇 번인지 양 손가락과 발가락을 합쳐도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는 한편, 백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귀중한 식재료를 얻으면 신뢰하는 요리사에게 맡기고 싶다며 그 조리를 나에게 시키기도 했다(당연히 납치가 전제다). 급기야 우주까지 끌려가 키보토스의 운명이 걸린 자동차 추격전을 하기도 했으니,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달갑지 않은 교류였다.

『미식 테러리스트.』

『그렇게 칭찬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칭찬 아니거든……』

 상대가 한 학년 위긴 하지만, 이 정도 잡담은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교류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나가 유명인이었다는 것도, 하루나와 교류했었다는 사실도, 전부 우리가 게헨나 학생이던 시절의 얘기일 뿐이다.

 한발 앞서 게헨나 학원을 졸업한 하루나는, 졸업과 동시에 미식연구회를 탈퇴했다는 것 같았다. 애매하게 말한 이유는 그저 지나가며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고, 하루나 본인에게서 직접 확인을 받지 못한 내용이기 때문에.

 연락도 엄청나게 줄었다. 여태까지 하루나가 무언가 소동을 일으키고 나를 휘말리게 하는 일방적인 전개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하루나가 졸업한 후로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급양부가 원체 바쁘기도 해서 내가 먼저 모모톡을 보내는 일도 없었으니, 연락이 줄었다기보다는 아예 없어졌다고 단언해도 될 정도였다.

 그 후 하루나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지금까진 뉴스를 보면 알기 싫어도 하루나가 식당을 폭파하는 장면이 종종 나와서 알게 됐으나, 하루나와 관련된 뉴스가 뚝 끊겼다. 졸업하고 미식연구회를 탈퇴하더니 조금은 성숙해진 걸까. 가끔 멍하니 이런 생각만 할 뿐, 딱히 연락하지는 않았다. 함께 우주까지 갔었지만 결국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이였다. 특별히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그렇기에.

「──하루나……!?」

 갑작스럽게 하루나와 재회하여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이사했는데 이웃집에서 지인이 나온다면 누구라도 놀랄 테지만.

「네. 오랜만이네요, 후우카 씨.」

「오, 오랜만…… 그, 왜 하루나가 여기 있는 거야?」

「이 집에 살고 있으니까요.」

「농담이지!?」

 내가 먼저 물어봐 놓고서는 무례한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사 가는 곳이 하루나의 옆방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체 어떻게 되먹은 확률이람?

 하루나가, 내 이웃이라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 희망의 빛이 넘실거리던 새로운 생활이 사실은 곧 끊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동아줄 생활임을 깨달았다.

 당연하잖아. 그 하루나가, 벽 하나 두고 옆에 살고 있는 거라고. 괜한 일에 휘말리는 미래밖에 안 떠올라……! 아, 그래도 요즘 하루나는 뉴스에 나올 만한 말썽을 일으킨 적도 없었던 것 같으니, 생각보다는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알 수 있는 건 내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것. 그리고 현관 앞에서 이사 인사는 뒷전이고 머리를 싸맨 채 내가 끙끙거리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저어, 후우카 씨? 괜찮으신가요?」

 좌절하는 나에게 하루나가 당황스러운 듯이 말을 걸었다. 그렇게 반응하는 게 당연하겠지.

「미안, 괜찮아…… 이웃집이 하루나였다는 거에 깜짝 놀라서 그래……」

「그러셨군요.」

 반면 하루나는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평소보다 더 침착한 느낌. 마치 처음부터 내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냉정한 반응이라고 해야 하나──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문을 열고 내 앞에 나타난 하루나가 이렇게 말했었지.

『평안하셨는지요, 후우카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내가 여기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닌가?

「하루나──」

「후우카 씨.」

 확답을 받고자 말을 건 순간, 하루나가 오른손을 들어 검지 끝으로 내 말문을 막았다.

「후우카 씨와 만나는 건 1년 만인가요? 오랜만의 재회인 만큼 쌓인 이야기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하는 법. 우선 후우카 씨의 인사가 먼저 아닐지.」

「──」

 일리 있는 말이었다. 원래 목적은 이웃집에 인사를 돌리는 것이었으니. 하루나가 나타나서 당황한 나머지 변질돼 버렸지만.

 후우, 심호흡을 한 번 마치고.

「……이웃집에 이사 온 아이키요라고 합니다. 이사 때문에 소란을 피우고 폐를 끼치게 되어 죄송합니다. 앞으로 옆에서 신세를 지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별건 아니지만 받아 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어젯밤 인터넷으로 1분도 안 걸려 찾아낸 전형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하루나를 상대로 깍듯한 인사를 건네는 게 조금 부끄러워, 마지막에는 로봇처럼 말하고 선물로 가져온 소바도 건네줬다.

「어머어머, 이것 참. 감사히 받을게요.」

 하루나는 국어책 읽기에도 개의치 않고 생긋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 이런 몸짓 하나하나에서 고상함이 느껴져, 이런 모습만 보면 완벽하고 친절한 아가씨 같았다.

「나중에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그래 주면 나도 기쁘겠지만, 하루나가 요리를 할 수 있었던가……?」

 매일 같이 하루나에게 끌려다니던 나날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으나, 하루나가 요리하는 모습이라곤 조금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실례되는 말씀이네요. 뜨거운 물을 붓고 3분만 기다리면 되는 쉬운 요리잖아요?」

「그건 컵라면이고……」

 그걸 요리라고 인정하고 싶진 않거든. 적어도 나는 말이지.

「교양 있는 대화는 여기서 마치죠.」

「교양이란 게 있었나……?」

「후우카 씨, 이후에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엣.」

 질문을 받고 지금 방 안이 어떤 상황인지 떠올려 봤다. 이삿짐 정리는 거의 다 끝났으니, 잠깐이라면 괜찮겠지.

「괜찮기는 한데…… 왜?」

「여기 계속 서서 얘기하는 것도 조금 그러니, 이 주변을 안내하면서 이야기를 마저 하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아, 그러면 나야 고맙지.」

 하루나의 제안은 나에게 있어 굉장히 고마운 제안이었다. 슈퍼 위치 말고는 아는 게 없으니, 그 밖에도 알아두면 좋은 가게의 정보를 물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온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도 묻고 싶어.

「그럼 부탁해도 될까?」

「네에. 나갈 준비를 하고 올 테니 10분 정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후우카 씨 방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알았어.」

「그러면 곧 다시 뵙죠.」

 하루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자기 집 안으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는 걸 보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

 설마하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인생이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정말이었어.

「하아……」

 현관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기분을 말하자면, 곤혹감이 가장 컸다.

 하루나가 이웃인 게 좋으냐 좋지 않느냐로 물어본다면, 솔직히 말해 좋지는 않았다.

 게헨나 시절에 하루나에게 당했던 일들을 떠올려 보면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 만약 이웃이 하루나가 아니라 주리었다면 솔직하게 기뻤을 것 같긴 한데.

 뭐, 불만을 토해 봤자 해결되는 건 없었다. 이웃집에 하루나가 산다고 해서 다시 이사를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엉뚱한 일에 휘말리는 게 싫을 뿐이지, 미식가인 하루나가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다고 평가해 주는 것 자체는 일종의 명예로도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친구라 부르기에는 조금 저항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루나에 대한 내 감정은, 이런 복잡한 마음이 얽히고설킨 상태였다.

「……메모장이 어디 있더라.」

 마음을 다잡자.

 아까 정리해 두었던 요리 메모장을 다시 꺼내 들었다. 여기에는 레시피 외에도 식재료를 파는 곳의 정보도 정리해 두고 있다. 급양부 때부터 써 온 든든한 파트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 곧 알게 될 새로운 가게의 정보들도 여기에 확실히 메모해 둬야지.

 메모장과 지갑을 가방에 챙기고 옷매무새를 다시 정리했다. 하루나가 다시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

 하루나가 집에 돌아가고 정확히 10분이 지나자, 인터폰 소리가 울렸다. 현관문을 열어 보니 외출복으로 깔끔하게 갈아입은 하루나가 보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가 볼까요?」

「잠깐만.」

 이번에는 샌들이 아니라 더 튼튼한 신발을 신었다. 갈아 신는 동안 하루나가 내게 물었다.

「후우카 씨, 안내해 줬으면 하는 장소가 따로 있으신지요?」

「음…… 근처 슈퍼 말고도 식재료를 살 만한 곳이 더 있을까?」

「흠. 그럼 역 앞 상점가 쪽으로 가 보죠.」

 하루나는 내 요구 사항을 듣더니 바로 행선지를 정했다.

「상점가가 있었구나?」

「네, 지붕이 있는 상점가가 있답니다. 정육점에 채소, 생선 가게까지 다양한 가게가 있었던 거로 기억해요. 식당이나 오락 시설도 있고 위치도 괜찮아서 꽤 활기가 도는 곳이에요.」

「헤에, 좋은 곳이네. ……엇차, 준비 끝. 갈까?」

 운동화로 갈아 신었으니 준비 완료. 빠트린 건 없나 다시 한번 확인한 뒤 하루나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조금 거리가 있으니 제 차로 가죠.」

「아, 응. 고마워.」

 문단속을 확인한 뒤 맨션 맞은편에 있는 주차장 쪽으로 걸어 나갔다. 차가 없는 나와는 관련 없는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벽에 걸린 간판을 보아하니 이 맨션 전용 주차장인 것 같지만, 세워져 있는 차는 딱 한 대뿐이었다. 구석에 세워져 있는 하얀 차가 하루나의 차라고 생각하는 건 필연적 흐름이리라.

「타시죠, 후우카 씨.」

 그 차에 다가가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는 하루나.

「……」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멍하니 서 있었다.

「……후우카 씨?」

「──아. 내가 타는 거구나?」

「에.」

 아무리 기다려도 차에 타지 않는 나를 보고 하루나가 의아한 듯이 내 이름을 불렀다. 비로소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그게. 하루나가 나를 차에 태울 때마다 둘둘 보쌈을 만 뒤에 뒷좌석에 대충 던져 넣었었잖아?」

 게헨나 시절, 하루나가 내 요리 솜씨를 빌리겠다고 찾아올 때마다 그런 식으로 납치당하는 게 일상이었으니, 무의식 중에 오늘도 그런 식일 거라 단정 짓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그랬던 적도 있었죠~……」

 시선을 피하는 하루나.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그렇고, 하루나가 운전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설마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

 조수석에 타면서 그렇게 중얼거리자, 하루나는 시선을 피한 채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즉답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 뒤에 하루나가 운전석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머나먼 과거의 일은 세월에 흘려보내는 게 어떨까요. 저랑 후우카 씨 사이잖아요.」

 그러더니 자기 좋을 대로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내가 잘 알고 있는 평소 모습 그대로의 하루나였다.

「……」

「아, 안전벨트부터 맬까요?」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자, 하루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안전벨트를 재촉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 따르기는 했지만.

「──했어.」

 준비를 마침과 동시에 그럼 가 볼까요, 라는 하루나의 말을 효시로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 역 앞에 있다는 상점가를 향해 달렸다.

「얼마나 걸려?」

「아마 5분도 안 걸릴 거예요.」

「5분 정도라.」

 지금 한 얘기를 메모장에 적었다. 예전에 계산한 바로, 차로 5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면 도보로 약 40분에서 50분 정도 걸릴 터.

 만약 지금 가는 상점가가 앞으로도 계속 다닐 만한 곳일 것 같으면, 앞으로 어떻게 갈 건지 그 수단을 생각해 놔야 했다. 여태까지는 급양부 차나 스쿠터가 있었지만, 이제는 쓸 수 없는 것들이니. 자전거도 따로 없으니 당연히 내 두 다리에 의지해야만 했다. 40분 정도 걸어 상점가에 도착한 후, 장을 보고 무거운 짐들을 든 채 다시 40분을 걸어 돌아온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상당히 힘들 것 같았다.

「……차가 있으면 좋겠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후우카 씨는 차가 없으신가요?」

「없어, 없어. 지금까진 급양부 차를 썼으니까. 휴일에도 슬쩍 쓰곤 했었는데, 이젠 졸업했으니까 아무래도 쓰기 힘들지.」

「졸업……」

 당분간은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뭐든 이동 수단을 확보하는 게 첫 번째 목표가 될 것 같았다. 중고 스쿠터 정도면 생각보다 빨리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새삼스럽지만, 게헨나 졸업 축하드려요.」

 빨간 불. 차가 멈추는 타이밍에 맞춰, 하루나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졸업 후 진로를 물어도 될까요?」

「진학했어. 다음 달부터는 어엿한 대학생이라는 말씀.」

「그렇군요. 대학생 후우카 씨라, 어감이 괜찮네요.」

「네 감각은 여전히 잘 모르겠는데.」

 그런 잡담을 주고받던 도중, 나는 한발 앞서 졸업한 하루나가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생 하루나일까, 아니면 사회인 하루나일까. 과연 어느 쪽일지.

「하루나는 대학 갔던가? 아니면 취업?」

「아뇨. 대학은 안 갔고, 따로 특정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에.」

 파란 불로 바뀌고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온 탓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어깨를 조금 들썩였다.

「그, 그럼 지금은 뭐 하고 있어?」

「──여행, 이라 할까요.」

「여행!?」

 또다시 놀랐다. 대학생 하루나도 사회인 하루나도 아닌, 여행자 하루나였을 줄이야.

「여행이라곤 해도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에요. 지금은 한 소규모 잡지에서 미식에 관한 칼럼을 비정기적으로 써내고 있고…… 그 소재를 찾는 김에 미식을 추구하는 여행을 겸하고 있는 거죠.」

「헤에……」

「졸업하기 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발언하는 매체가 미식연구회에서 잡지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렇구나.」

 그래도 하루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진심으로 매진하겠지. 멋진 자세라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점만 빼면 말이다.

「하루나다워서 좋은 것 같아.」

「그런가요?」

「나라면 흉내조차 못 낼 삶인 것 같아서. ……아,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조금이나마 구원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응?」

 하루나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운전 중인 하루나의 옆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으나, 그 미소는 말하자면 쓴웃음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지금 삶의 방식이 하루나가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던 걸까.

「무슨 말──」

「자아, 곧 도착한답니다.」

「앗.」

 되물으려는 찰나, 차가 상가 근처 유료 주차장으로 쑥 들어섰다. 그 타이밍과 차의 덜컹거림이 맞물려 이야기가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뭐, 됐나. 나중에 다시 물으면 된다. 하루나에게 묻고 싶은 건 그것 말고도 많으니까.

 

 

 


 

 

블로그 개장 이래 최장 휴가

였던 건 아니고 진짜 바빴으니까 살려줘~~

혹시 다들 이미 굶어 죽으신 건 아니죠...? 살아나세요ㅠㅠ

 

분명 출국하기 전에 읽은 소설인데

일본에 온 뒤 저의 삶과 굉장히 맞물리는 부분이 있어서 번역하면서 즐겁습니다

근데 저한텐 하루나 같은 인연이 없다는 게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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